[평론의 시간 - 004] '둘째에게' 보내는 타인을 대하는 역설적 사상

202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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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이게 보일 정도로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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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네이버웹툰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관찰 중인 <둘째에게>를 감상하다 보면 철학적으로 던져지는 화두가 있다. "이타적이게 보일 정도로 자기 자신만 생각하라"는 대사는 문화적 관점에서 현대인이 앓고 있는 ‘관계의 과잉’과 ‘착한 아이 컴플렉스’에 대한 서늘한 통찰이라 여겨진다. 대중 서사에서 ‘둘째’라는 상징은 대개 첫째의 권위와 막내의 애교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 증명을 위해 타인의 기분을 살피고 희생하는 ‘조율자’의 숙명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에 대해 가장 지독한 이기심이 곧 가장 숭고한 이타심으로 치환된다는 역설을 통해 전복적인 선언을 한다.


심리학적 시선에서 볼 때, 준비되지 않은 희생은 필연적으로 ‘보상 심리’라는 독을 품게 된다. 내가 나를 깎아내며 베푼 선의는 상대에게 보이지 않는 부채감을 지우고, 종국에는 원망의 불씨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 "이타적이게 보일 정도로 자기 자신만 생각하라"는 주문은 나라는 존재의 완전한 자립이 요구 되어질 때 효력을 발휘한다. 내가 스스로를 완벽하게 돌보아 타인에게 어떠한 심리적, 물질적 기대도 하지 않는 상태, 즉 '나로 인해 타인이 신경 쓸 일이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관계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고도화된 배려라는 뜻인 셈이다.


결국 이 문장은 이기주의를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내 삶의 밀도를 높이라는 준엄한 명령과도 같다.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단단하게 뿌리 내릴 때, 비로소 타인에게 뿜어낼 수 있는 에너지는 ‘의무’가 아닌 ‘여유’가 되므로..


웹툰 속 이 대사를 마주하며, 그동안 '좋은 사람' 혹은 '역할에 충실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나 자신을 얼마나 소홀히 다루어 왔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IP의 가치를 발견하고 문화 콘텐츠 산업의 미래를 고민하는 바쁜 일상 속에서, 정작 내 내면의 목소리는 타인의 기대라는 소음에 묻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지치고 고갈된 상태에서 내놓는 성과나 호의는 진실될 수 없다. 이제는 타인을 돕기 위해 먼저 나라는 그릇을 가득 채워야 함을 고민해본다. 스스로 행복하고 단단해지는 것이, 나를 아끼는 주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미움받지 않기 위해 선택하는 비겁한 양보보다는, 비난 받더라도 내 가치관에 충실한 선택을 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명확한 자기 기준을 가진 사람의 태도는 투명하며, 그러한 투명함이 오히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건강하고 명료하게 만든다는 것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는 '가짜 배려'를 경계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앞으로는 결과로서의 이타주의를 지향하고자 한다. 일부러 착해지려 애쓰기보다, 내 분야에서 압도적인 전문성을 쌓고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데 집중하는 것을 의무로 해야지 싶다. 그렇게 충만해진 내 삶의 여유가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으로 흐르도록 할 수 있다는 결론이 선다. 이를 통해 억지로 베푸는 이가 아닌, 존재 자체로 주변을 밝히는 이가 되었으면 싶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기대를 채우기 위한 조연을 지양하고,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주인공이 되기로 다짐해본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세상을 향해 가장 이타적인 태도가 될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깨달음이 훌륭한 작품이 전하는 울림이자,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되는 기능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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