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보다] 의심을 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야 할 것들 《의사에게 죽지 않는 법》

202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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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병원에서 쉽게 판단을 내려놓거나 의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아프고, 불안하고, 시간이 없는 상황이 되면 누군가 명확한 답을 제시해주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진료실에 앉아 의사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그의 입이 열리는 순간,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의사 선생님이 다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안도감이 찾아온다. 《의사에게 죽지 않는 법》은 바로 그 안도감이 언제, 어떻게 위험으로 바뀔 수 있는지를 차분하지만 집요하게 묻는 책이다. 그러나 책의 목적은 의사를 불신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의학이 다시 과학다워지기 위해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가를 독자 스스로 질문하며 생각하게 만든다.


책의 저자인 마티 마카리는 외과 의사이자 공중보건 연구자다. 그는 의료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한 질문 하나에서 출발한다. “이 치료와 권고는 정말 충분한 근거 위에 서 있는가?” 의료는 분명 과학의 성과 위에 세워졌지만, 실제 현장은 언제나 이상적인 과학의 작동 방식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권위, 관성, 집단사고, 제도적 이해관계가 엮이며 ‘검증되지 않은 믿음’이 지침이 되고, 지침이 상식으로 굳어지는 순간들이 생겨난다. 저자의 목적은 바로 그 의학의 사각지대(Blind Spots)를 추적하는 것에 있다.


《의사에게 죽지 않는 법》이 흥미로운 이유는 의료의 실패를 개인의 무능이나 악의로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저자는 의료 시스템이 어떻게 잘못된 방향으로 굳어지는지를 구조적으로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로 땅콩 알레르기가 있다. 한때 전 세계적으로 “영·유아에게 땅콩을 먹이지 말라”는 권고가 널리 퍼졌다. 과학적 확신보다는 ‘조심하자’는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이 조언은 오히려 알레르기 발병률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 이후 연구에서 드러났다. 문제는 누군가 일부러 틀린 말을 했다는 데 있지 않다. 불충분한 근거가 반박 없이 권고가 되고, 권고가 오랜 시간 동안 수정되지 않은 채 유지된 과정에 있다.


콜레스테롤, 항생제 남용, 호르몬 대체요법, 난소암의 기원에 대한 기존 통념 역시 비슷한 경로를 거친다. 책 속에 제시된 사례들은 특정 연구 결과가 어떻게 과도하게 일반화되고, 이후 반대 증거가 등장해도 기존 지침이 쉽게 수정되지 않는지를 보여준다. 독자는 그 과장을 통해 “의학은 왜 이렇게 자주 말을 바꾸는가?”라는 오래된 불만에 대해 다른 시선으로 보는 방법을 알게 된다. 말이 바뀌는 것이 문제라기보다, 바뀌어야 할 때 바뀌지 않는 구조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이 책을 읽고 가장 경계해야 할 오독은 “의사는 믿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저자의 메시지는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는 의료가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 더 많은 권위가 아니라, 더 많은 질문과 검증에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의사에게 죽지 않는 법》은 치료법을 외우게 하는 책이 아닌, 독자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때문에 전체적인 흐름에 있어 환자가 의학적 결정을 ‘대리 위임’하는 존재가 아니라, 정보를 이해하고 선택에 참여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면, ‘사례 중심 서술’은 이 책의 강점이자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각 장에서 제시되는 사례들은 매우 강렬해 독자의 인식을 흔들지만, 동시에 그 강렬함 때문에 “의학은 늘 틀린다”는 과도한 일반화로 미끄러질 위험도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저자는 의료의 성취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독자가 자극적인 사례만 기억하게 될 경우 책의 본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메시지가 소비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따라서 책을 읽을 때 중요한 태도는 균형이다. 의학은 수많은 생명을 살려온 과학이며, 동시에 인간이 운영하는 시스템인 만큼 오류와 관성이 존재한다는 두 지점을 함께 붙여서 읽어야 한다. 이 균형을 유지할 때, 《의사에게 죽지 않는 법》은 불안과 공포를 키우는 책이 아닌, 의료를 더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역설적인 안내서가 된다.


이 책은 미국 의료 시스템을 배경으로 쓰였지만, 한국 독자에게도 시사점은 분명하다. 본문에서 한국 의료 현실과 직접 연결되는 해설은 제한적이지만 우리 역시 학회 지침, 관행적 처방, 과잉 검사 논란 속에 살고 있다. 만약 이 책이 한국 독자를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내 진료 환경에서 ‘질문이 어려운 구조’부터 짧은 진료 시간, 위계적인 의사와 환자 관계에 대한 언급이 덧붙여졌다면 더 현실적인 공감을 얻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의사에게 죽지 않는 법》은 의료 환경을 공격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의료 환경과 그 안의 시스템을 더 정확히 믿기 위해 필요한 태도를 가르치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건강을 전문가에게 맡길 준비는 되어 있는가? 그렇다면 질문할 준비도 되어 있는가?” 던져진 질문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수동적인 환자가 아니라, 의료의 한 축을 이루는 참여자가 된다.


현대 의료 체계 안에서 스스로 무엇을 믿고,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관통하여 병이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언젠가 병원이 필요해질 모든 사람에게 읽힐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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