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보다] 미술관에 간 만화미학자_만화와 미술 사이의 경계를 지우다

202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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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당연하게도 책의 제목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만화미학자'라는 말이 눈에 박혔다. 책 전반에 걸쳐 저자는 '만화미학'을 단지 만화에 대한 이론이나 역사, 비평에 국한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만화에 적용된 미술사의 흐름, 다양한 화풍, 회화기법까지 포괄하여 연구하는 통합적이고 융합적인 학문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접근은 만화를 고립된 콘텐츠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사 속의 유기적 일부로서 위치 짓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만화미학’이라는 말은 아직 널리 통용되는 개념은 아니지만,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만화라는 매체에 대한 미학적, 예술적, 철학적 탐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지금, 그 용어의 도입과 정의는 충분한 학문적·문화적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자면, ‘만화미학’은 단순히 만화를 분석하거나 비평하는 것을 넘어서, 만화를 하나의 독립된 예술 장르로 인식하고, 그 안에 내재된 미적 구조와 시각적 언어, 그리고 독자에게 전달되는 감각적 경험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만화의 컷 구성, 리듬감, 칸과 칸 사이의 여백, 시선의 흐름 등 만화만의 독특한 표현 방식을 미술사 속에 담긴 작품의 해석을 통해 어떻게 의미가 생성되고, 감정이 유도되며, 미적 경험이 성립되는지를 깊이 있게 분석할 수 있다.

특히, 전통적인 미술사와 미술이론을 기반으로, 회화·조각·영상예술 등 기존의 예술 형식에서 논의된 미학적 개념들을 만화에 접목시킴으로써 새로운 해석의 지평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회화의 구도 이론, 인상주의의 시각적 개념, 현대미술의 실험성과 같은 예술사적 논의들을 만화의 장면 연출, 캐릭터 표현, 상징적 구도 등에 적용해 보며, 만화라는 매체가 독자에게 어떤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지를 조명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만화미학적’ 접근으로 보는 만화를 통해 인간의 감각과 사고, 문화와 예술, 서사와 철학을 함께 탐구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만화미학'에서 만화는 ‘읽는’ 것을 넘어서, 만화를 ‘느끼고 사유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며, 이를 통해 만화가 지닌 예술적 깊이를 깨닫게 된다. 이는 단지 만화를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창작 영역의 새로운 미적 가능성을 제시하고, 독자에게는 더 풍부한 해석의 경험을 제공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와 같은 접근과 해석이 AI 시대의 결과물과 창작자의 창작물을 가늠짓는 가치 측정의 척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만화미학자’는 기존의 예술사와 이론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 틀을 넘나드는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학문적 태도를 가진 연구자라 할 수 있다. 이는 만화를 통해 예술을 다시 사유하고, 예술을 통해 만화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제안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럼 이제 책의 내용을 일부 살펴보기로 하자.

《미술관에 간 만화미학자》는 만화를 단순한 오락의 수단이나 대중매체로만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미술사와 미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시도를 담은 책이다. "아니, 만화에도 미학이 있나요?", "대체 만화에 미학을 따져가면서 봐야 하나요?"라는 흔한 질문에 대해, 저자는 오랜 연구와 깊이 있는 통찰을 바탕으로 그 해답을 차분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 책은 마치 거울처럼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비춰주며,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미술과 만화 사이 어딘가의 예술적 가치를 상기시킨다.

책의 도입부에서 저자는 우리가 흔히 미술의 기원으로 배우는 프랑스의 라스코,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보다 더 오래된, 프랑스 동남부의 쇼베 동굴벽화를 언급한다. 이 벽화는 3만 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단순한 상징적 표현을 넘어 동물의 움직임과 원근법, 구도의 개념까지 포함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특성이 특정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상황을 드러내는 '만화'적 특성과 맞닿아 있다고 말하며, 인류의 시각예술은 본래부터 이야기성과 장면 연출을 지향해왔음을 강조한다.

책의 중반부에는 '사람들은 왜 모나리자에 환장할까?'라는 흥미로운 질문이 등장한다. 이는 대중이 예술작품을 대할 때 갖는 집단적인 열광과 그 배경에 놓인 미학적 요소를 되짚는 장이다. 저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모나리자>에서 사용한 '스푸마토' 기법과 삼각형 구도, 황금비율의 적용 등을 상세히 소개하며, 아름다움은 단순히 주관적인 감정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예술사적인 맥락 속에서 생성되는 것임을 설명한다. 이러한 기법과 논의는 곧 만화에서도 다양하게 실험되고 적용되는 요소들이며, 바로 그 지점에서 '만화미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의 의미가 드러난다.

책의 외형적 요소에서도 저자의 진정성이 엿보인다. 표지를 장식한 그림과 풍경은 저자가 직접 촬영한 자료를 바탕으로 구성한 것으로, 단순한 참고용 이미지를 넘어서 실제 공간과 체험이 반영된 시각적 결과물이다. 이는 책의 제목이자 핵심 질문인 '만화미학자는 왜 미술관에 갔을까?'에 대한 답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누군가의 해석을 재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정보를 구축하고 해석하려는 저자의 태도는 이 책의 전반적인 신뢰도를 높여준다.


궁극적으로 『미술관에 간 만화미학자』는 미술과 만화라는 교차 영역의 개념을 보다 깊이 있고 넓은 시야로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다. 만화와 미술, 이 두 장르를 넘나드는 저자의 시선은 독자에게 새로운 사유의 장을 열어주며, 학문적 깊이와 대중적 흥미를 동시에 만족시킨다. 만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물론이고, 예술과 미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도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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