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제작과 창작의 경계를 이야기하다

2025-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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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웹툰 생태계에 본질적인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특히 ChatGPT, Midjourney 등 텍스트 및 이미지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은 창작의 전 과정을 빠르게 자동화가 가능하게 만들고 있으며, 그 여파는 4컷 만화, 인스타툰, 브랜드툰 등 다양한 형태의 이미지 기반 콘텐츠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 한 장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지브리풍, 디즈니풍, 또는 원하는 스타일의 일러스트를 생성할 수 있으며, 과거에는 수일 또는 수주가 걸렸던 작업이 단 몇 분 안에 완성된다. 이로 인해 광고 및 홍보 수단을 위해 전문 작가에게 의뢰하던 브랜드툰조차도 직접 제작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으며, AI 기반 콘텐츠 툴을 도입한 마케팅 스타트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스타일’에 대한 저작권 문제도 제기되고 있는데, 특정 스타일(예: 지브리풍, 디즈니풍)을 AI가 생성할 수 있게 되는 상황에서 그 자체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느냐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법적으로 스타일 자체는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아니며, 하나의 화풍이나 표현 방식이 특정 개인 또는 기업에게 독점적으로 귀속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스타일이나 아이디어는 본질적으로 창작의 공통 자산에 가까운 측면이 있으며, 이를 과도하게 보호하면 오히려 창작의 다양성과 실험 가능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창작의 역사 자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확장되어 온 흐름인 만큼, 완전히 독립적인 스타일이나 아이디어를 정의하고 보호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스타일은 보호되지 않더라도, 이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창작을 포함하여 완성된 결과물이 독창성을 갖출 경우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스타일 자체는 보호 대상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고유의 특정한 스타일을 상업적 용도로 활용할 경우, 결과물의 성격에 따라 법적 제재나 권리 주장이 가능할 수 있기에 유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특정 스타일을 대량 학습하여 AI가 그것을 모방하거나 재구성하는 방식에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존재한다. 아직까지 AI 모델을 훈련시키는 과정 자체에 대한 법적 기준이나 판례가 거의 없어, 이에 대한 국제적 논의와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향후 창작자는 단순히 스타일을 따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를 활용해 자신만의 해석과 감정을 담은 창작물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 이는 오히려 AI 콘텐츠 범람 속에서도 독자적인 정체성과 차별화된 가치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결국, 사람이 만들어낸 고유한 결과물은 더욱 뚜렷한 예술성과 창의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단순히 제작 툴이 더 편리해졌다는 차원을 넘어, 웹툰이라는 창작 장르의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신호탄이다. 핵심은 창작의 중심축이 "손으로 그리는 사람"에서 "무엇을 이야기할지 기획하고 감정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전통적인 작가들에게 위기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동시에 기존의 방식으로는 열 수 없던 창작의 새로운 가능성도 함께 열고 있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대, 무엇을 만들 것인가?

한때 '작화 능력'은 콘텐츠 제작의 절대적인 자산이었다. 훌륭한 작화 실력은 곧 작품의 완성도와 연결되었고, 플랫폼에서의 성공 가능성도 높았다. 하지만 이제 AI가 선형적인 드로잉부터 복잡한 배경 구성까지 일정 수준 이상 자동 생성해 주는 시대가 되면서, 단순한 이미지 생산은 더 이상 차별화 요소가 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작화 안에서도 미장센과 시그니처에 따른 표현 기법이나 구도, 색감, 묘사 방식 등 형식적, 미학적 측면에서 자신만의 특성을 부여한다면 전혀 다른 얘기겠지만 말이다. 


이제 창작자에게 필요한 경쟁력은 '어떻게 잘 그리는가'보다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누구를 향해 어떤 감정을 전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이다. 즉, AI를 도구로 사용하는 모든 이들이 비슷한 퀄리티의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다면, 콘텐츠의 핵심은 그 안에 담긴 이야기, 세계관, 공감의 힘으로 옮겨간다. 기획력과 감성 설계 능력이 창작의 주도권을 쥐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웹툰 작가나 콘텐츠 제작자들은 AI를 단순한 자동화 도구나 대체재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체력 소모가 큰 배경, 소품, 프레임 정리 등은 AI에 위임하고, 자신은 스토리텔링, 캐릭터 연출, 감정의 흐름 등 본질적인 창작 역량에 집중함으로써 더욱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비슷한 형식과 스타일의 콘텐츠가 AI를 통해 대량 생산되고 누구나 일정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시대일수록, 창작자 스스로가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와 표현, 감정의 밀도를 찾아내고 그것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진정한 창작의 본질은 단순히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거나 익숙한 스타일을 차용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비슷해 보이는 수많은 결과물 속에서 나만의 무게감과 정체성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는가에 진짜 창작의 핵심이 있다. 이 시대의 창작자는 AI와 같은 도구를 활용하면서도, 그 너머에서 독창적인 사고와 진정성 있는 감각으로 독자에게 닿는 ‘단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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